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안 로만 리켈메 (문단 편집)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 경력]] === 1997년 FIFA 세계 청소년 대회를 우승으로 이끌고 그해 11월 16일, [[다니엘 파사레야]] 당시 감독이 리켈메를 성인 국가대표팀으로 발탁시켜 콜롬비아와의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1998 프랑스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에 출장하면서 데뷔하였다. 이후 [[1999 코파 아메리카 파라과이|1999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하여 3도움을 기록했고, 2003년 4월 30일 리비아와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첫 골을 넣었다. 그러나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하였고, [[2004 코파 아메리카 페루|2004 코파 아메리카]]때는 부상으로 빠졌다.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독일|2005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간만에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여 3골 1도움으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결승에서 브라질에 4-1로 완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의 주전 플레이메이커로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며, 리켈메가 전방의 [[에르난 크레스포]], [[막시 로드리게스]], [[하비에르 사비올라]] 등에게 순간적으로 뿌려주는 킬패스는 굉장히 위협적인 공격루트였고, 세트피스 상황에서 그가 올려주는 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술이었다. 조별예선 첫 경기인 코트디부아르 전부터 아르헨티나가 넣은 두 골에 모두 관여했다. [[에르난 크레스포]]의 첫 골은 프리킥 상황에서 리켈메가 길게 붙여준 공이 키퍼가 튀어나와 처리하기에는 애매한 위협적인 위치로 떨어지는 바람에 튀어나온 루즈볼을 크레스포가 영리하게 주워먹은 것이며, 이후에는 코트디부아르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완벽하게 무력화시키는 엄청난 스루패스를 찔러넣어 [[하비에르 사비올라]]의 골을 어시스트 했다. 두 번째 경기인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전에서는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공격의 기점 역할을 톡톡히 하며[* [[에스테반 캄비아소]]의 그 유명한 골도 리켈메와 사비올라의 센스있는 원투패스로 순간적으로 수비 라인에 구멍이 생긴 것이 결정적이었으며, [[리오넬 메시]]가 얻어낸 프리킥 상황에서는 순간적으로 사이드로 쇄도하는 메시에게 짧은 패스를 넣어 메시가 그대로 측면을 타고 가서 땅볼 크로스를 올린 것을 [[에르난 크레스포]]가 골로 연결시켰고, 다섯번째 골인 [[카를로스 테베스]]의 골도 테베스의 과감한 1대1 돌파가 좋았지만 측면의 테베스에게 롱볼을 붙여준건 리켈메였다.] MOM으로 선정되었다. 세 번째 경기인 네덜란드전에서도 직접적인 공격포인트는 없었지만 위협적인 땅볼 프리킥과 중거리슛을 선보였으며, 죽음의 조라 평가받던 C조를 2승 1무로 쉽게 통과하며 16강 멕시코와 격돌하게 되었다. 16강 멕시코전에서도 그의 활약은 여전했는데, 팀이 1대0으로 지고 있던 전반 10분 코너킥 상황에서 정확한 킥으로 [[에르난 크레스포]]의 동점골을 어시스트 했고, 이후에도 기가 막힌 턴동작 이후 [[하비에르 사비올라]]에게 멕시코 수비진을 바보로 만드는 엄청난 킬패스를 찔러주는 등 종횡무진 활약했으며, [[막시 로드리게스]]의 원더골에 힘입어 8강에 진출했다. 개최국 독일과의 8강전에서도 후반 49분에 또 한번 코너킥 상황에서 정확한 킥으로 [[로베르토 아얄라]]의 선제골을 어시스트 했으나, 감독이었던 [[호세 페케르만]]이 1골을 지키기 위해 리켈메와 크레스포를 차례로 교체한 것이 화근이 되어 후반종료 10분전 [[미로슬라프 클로제]]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결국 승부차기 끝에 탈락하며 리켈메의 첫 월드컵 도전은 8강에서 마무리되었다.[* 공교롭게도 월드컵 직전, 챔피언스 리그에서 PK 맞대결을 펼쳤던 [[옌스 레만]]을 다시 적으로 만났으나, 레만의 선방쇼로 팀은 탈락했다] 그럼에도 3도움[* 4도움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https://www.fifa.com/fifaplus/en/articles/top-assisters-at-world-cup-qatar-2022|피파 홈페이지에서 3도움으로 집계한 것이 확인되었다.]]]을 기록하며 그의 중심으로 전술을 짰을 때 얼마나 위력적인 선수인지를 또 한번 입증했다. [[2007 코파 아메리카 베네수엘라|2007 코파 아메리카]]에도 출전해 5골 3도움이라는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팀을 결승까지 끌어올렸다. 리켈메가 중심이 된 아르헨티나는 피파 랭킹 1위에 온갖 스타 플레이어가 즐비한 우승후보 1순위였고 예상대로 결승까지 파죽지세로 올라갔다. 그러나 정작 결승에서 주전 대부분이 빠진 브라질에게 3-0으로 참패하며 준우승에 그친다.[* 이 대회를 계기로 [[둥가]]의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알려졌다.] 당시 대표팀 주장인 [[로베르토 아얄라]]의 자책골로 안그래도 분위기도 안좋았는데, 리켈메 본인은 어이없게도 [[줄리우 밥티스타]]에게 압도를 당하고 말았다.[* 세비야에서의 폭발적인 득점력이 죽어버리고, 아스날에서 삽질을 해서 그렇지 당시엔 좋은 선수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엘클에서 선제 결승골을 넣고 라리가 우승에 기여하기도 했지만 로마에서 심각한 삽질을 저지른 후 이미지가 대폭 하락했다.] 2007년 칠레와의 경기에서 한 경기에 프리킥으로 2골을 꽂아넣으며 팀의 2-0 승리를 견인하기도 한 리켈메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니콜라스 파레하,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와 함께 와일드카드로 출전하여 아르헨티나 주장을 맡아 아르헨티나의 올림픽 축구 2연패에 공헌했다. 그러나 [[디에고 마라도나]]가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리켈메의 역할을 축소시켰고, 그의 경기력을 대놓고 질타하는 발언을 쏟아냈는데 이를 계기로 마라도나와 리켈메 간에 불화가 생겨나면서 리켈메는 2009년 3월, 마라도나가 있는 한 대표팀 복귀는 없을 것이라는 발표와 함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결국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도 제외되었다. 2011년 8월, [[알레한드로 사베야]]가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 리켈메의 국가대표팀 복귀를 설득하여 브라질과의 2연전에 아르헨티나 대표팀으로 선발했으나 부상으로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